영재교육 해법은 없나
'만들어진 영재' 아닌 진짜 영재를 찾아라
서울시교육청 과학영재교육과 영재교육 담당 홍덕표 장학관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3월 영재교육 종합발전계획 발표 이후 30개에 이르는 중점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여러 개의 스케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홍 장학관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학부모 교육’이다. ‘영재교육에 웬 학부모 교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겐 이 문제만큼 심각한 게 없다.


해법1. 학부모 의식을 바꿔라

또 다른 특목고로 오해… 학부모 연수•홍보 필요

“일하면서 제일 힘든 게 영재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오해를 바로잡는 겁니다. 흔히 영재교육이라고 하면 ‘우수학생을 위한 또 하나의 특혜’ ‘선행학습의 다른 말’ ‘교육 평등주의에 위배되는 정책’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영재교육은 기존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조기에 발견해 집중 관리하는 일종의 ‘특수교육’이에요. 그런데 몇몇 극성 학부모들이 영재학교를 특목고의 일종인 것처럼 인식하는 바람에 영재교육의 본래 의미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습니다.”

홍덕표 장학관은 산적한 영재교육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틈틈이 서울 시내 16개 지역교육청을 돌며 영재교육에 관한 학부모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영재교육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모아 홍보 브로슈어도 제작•배포했다. 이와 관련, 향후 5년간 시교육청이 투입할 예산은 약 400억원. 예산 규모로 보나 투입되는 인원으로 보나 전국 최대 규모다. 홍 장학관은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우수 교사 인프라가 탄탄하고 연구소나 대학 등 학교와 연계할 수 있는 기관도 많아 여러 모로 영재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유리하다”며 “현재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해 교육청 내 영재교육원 지도교사가 참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기 위한 표준화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한 상태”라고 말했다. 오는 9월이면 총 23종의 가이드라인이 전국에 배포될 예정이다. 그는 “유난한 사교육 열기로 본래 의미가 왜곡되고 있는 국내 영재교육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학부모의 도움과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법2. 체계적 커리큘럼 시급

‘영재’ 정의 다시 세우고 연구•인력 양성 등 지속 투자를

국가 차원의 체계화된 영재교육 커리큘럼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영재성, 즉 ‘어떤 사람이 영재인가’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릴 필요가 있다. 이때 정의란 영재가 태어나는 존재인지 만들어지는 존재인지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전체 교육 대상의 몇 퍼센트를 영재로 봐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미국 영재교육학회엔 영재성의 개념과 정의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분과(Conceptual foundation division)가 있을 만큼 이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재의 의미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영재교육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인 만큼 우리도 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영재교육 커리큘럼 개발을 위해선 관련 분야에 대한 지속적 투자도 절실하다. 특히 영재교육은 이론적 기초연구를 비롯해 선발모형 및 프로그램 개발, 교육인력 배출사업 등 각 분야의 연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또한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고 성취를 이뤄야 하므로 정부 차원의 중장기적 지원은 필수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상원의원 제이커브 재비츠(Jacob K. Javits)의 주도로 공표된 영재교육조례를 통해 27개 주에 걸쳐 46개의 영재교육 관련 프로젝트가 재정 지원을 받았다. 여기서 조성된 기금 ‘재비츠 펀드(Javits Fund)’로 추후 미 국립영재교육연구소가 3년간 영재교육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실시할 수 있었다.


해법3. 다양한 영재 판별도구가 필요하다

과학에 치중… 계량화된 평가는 ‘훈련된 우등생’만

전문가들은 “영재교육이 입시교육화 되는 걸 막으려면 제대로 된 영재 판별도구 개발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객관성 확보에 치중해 평가 수단을 점수화•계량화할 경우 영재성이 잠재된 ‘진짜 영재’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반복된 선행학습으로 훈련된 ‘무늬만 영재’를 잘못 뽑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영재의 경우 창의력과 과학적 탐구력, 논리적 사고력 등이 주요 평가도구가 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만든 초등 고학년용 과학영재 판별도구는 1차에서 과학적 사고능력 검사와 과학활동 및 흥미검사를, 2차에서 실험 위주의 프로젝트형 과학문제 해결능력 검사를 각각 실시한다.

그러나 이 같은 능력은 굳이 영재 선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교육 영역에서도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어서 영재 판별도구로선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희형 강원대 과학교육학부 교수(강원대 과학영재교육원장 겸임)는 “현재 각 시도교육청 과학영재학급이 똑같은 평가도구와 방법으로 대상자를 선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영재교육의 철학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수학영재나 과학영재 판별도구는 비교적 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돼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영재성은 음악, 미술, 디자인, 체육, 글짓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합리적 도구 개발은 태부족인 게 현실이다. 물론 전공별로 이뤄지는 산발적 연구조차 없었던 건 아니다. 디자인 분야만 해도 지난 2005년 김병수 계원조형예술대 그래픽디자인과 교수가 이미지 변형 및 재구성력, 언어 구사력, 추상적 개념의 시각화 검사 등을 포함한 디자인영재 판별도구를 개발, 제안한 바 있다. 예술영재와 관련해서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나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판별도구 개발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원예산 규모 등 여러 면에서 아직 과학영재에 비해 연구활동이 미진한 실정이다.


해법4. 성패는 전문교사 양성에 달렸다

지식은 물론 전문성 필수… 자격증제 도입해야

영재교육의 성패는 자질을 갖춘 전문교사 양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영재교육 관련 연구는 대부분 영재교육 프로그램 자체에 맞춰져 있었을 뿐 영재교사가 그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흔히 영재교사는 일반 교사보다 한 단계 발전된 지식이 요구된다. 실제로 2003년 서혜애 경상대 과학교육학부 교수의 조사 결과, 국내 영재교육 교사 중에는 석사•박사 등 고학력 소지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교육 교사에겐 지식뿐 아니라 다른 전문성도 요구된다. 서 교수는 이를 영재의 사회적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상담할 수 있는 능력, 영재교육의 목적과 철학을 이해하는 능력, 영재 학부모나 지역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등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영재교육 전문교사를 양성하려면 교육과정 내에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영재교육 성공사례들은 하나같이 “영재교육의 중심은 교사가 돼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영재교사의 자격 요건 및 제도적 장치는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 이들을 위한 연수나 재교육 기준도 미처 검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교과부 등 주무 부처는 자격증 제도 도입과 승진 가산점 부여 등 제도 보완을 포함해 효과적인 연수 프로그램 등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 인터뷰 | 영재교육 전문가 김명환 교수

“진학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 버려야 바로 설 것”

김명환 경원대 물리학과 교수는 영재, 특히 과학영재 분야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사단법인 한국과학영재지원정보센터 이사장, 영재교육 프로그램 개발연구기관 김연구소 소장 등 그가 맡고 있는 영재교육 관련 직함도 여러 개다. 그는 “영재교육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풍토가 너무 안타깝다”며 “우리나라 영재교육이 바로 서려면 그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교과부가 발표한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의 골자는 현재 4만명 선인 영재교육 대상자를 7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다. 대상자 확대가 바람직한 영재교육의 방향인가. “7만명이라고 해야 전체 교육 대상의 1%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 같은 영재교육 선진국에선 적게는 3%, 많게는 5%까지 영재교육을 받게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모든 학생이 판에 박힌 교과서로 공부하는 평준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재는 이런 환경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번 조치는 그런 학생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행 영재교육이 수학•과학 쪽에 편중돼 있지 않다면 1%가 아니라 5% 이상 비중이 늘어났어야 한다.”

영재 전문교사의 확충 없이 무조건 대상자만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닐 것 같은데. “영재교육이 제도화되기 이전인 1998년부터 일부 대학이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을 중심으로 이미 초등 영재교육이 진행됐다. 영재교육진흥법이 발효된 2002년 이후 5년에 걸쳐 전국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영재교육 직무연수도 실시해 왔다. 영재교육 현황을 조사해 보면 연수과정을 마친 교사 중 상당수가 영재교육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유휴 인력을 활용하고 추후에도 교원 연수를 꾸준히 진행하면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교사 대상 영재교육 연수는 교사들이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영재에 관한 올바른 관점을 갖게 하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과학영재학교 탄생을 계기로 벌써부터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한숨을 쉬며) 사교육 얘기로 몰아가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영재학교의 설립 의도가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워낙 그런 정보에 발 빠르게 반응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영재가 아닌 자녀도 잘만 가르치면 영재로 만들 수 있다’는 사교육업체 광고는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비(非) 영재가 무리하게 영재교육을 받고 영재의 무리 속에 편입될 경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사교육 시장이 아무리 요동쳐도 부모가 중심을 잡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